명인각

奧我東之名門奕閥盖嘗爲其仕宦世居國都故士夫家先墓多在近畿

오아동지명문혁벌개상위기사환세거국도고사부가선묘다재근기

우리 동국의 명문거족은 높은 벼슬을 지내면서 대개 국도의 한 마을에서 대대로 살고 있었다. 그러므로 사대부가의 선대 묘소가 서울 근교에 많이 있으니

 

高陽九智山蕃德之爲晉陽氏阡是也其始入葬乃麗末藝文館大提學靖平柳公諱구而其

고양구지산번덕지위진양씨천시야기시입장내여말예문관대제학정평류공휘구이기

卒在於太祖七年戊寅

졸재어태조칠년무인

고양 구지산 번덕동 진양류씨 여러 대(代)의 묘소가 바로 이것이다. 제일 먼저 장사지낸 분은 바로 고려말엽에 예문관 대제학을 지내신 정평류공 휘 구이신데 그는 조선태조 7년 무인년에 돌아가셨으니

 

則歲迫六百代過二十而昭穆繼穴宗支同原堂斧與神壇旣閱世波之湯而保無他虞者

즉세박육백대과이십이소목계혈종지동원당부여신단기열세파지탕양이보무타우자

凡二十四位也

범이십사위야

어언 육백년 세월이 흘러 20여 대(代)가 되었으므로 소목(祖孫 代代로)이 이어지고 한 종중의 지파(자손)가 같은 언덕에 모셔져 그 묘소와 신단이 이미 험난한 세파를 겪었으나 아무 탈 없이 보존된 것이 24위다.

 

挽近時象異昔人事多忙有事歲薦勢難一一上墓故前此十數年建閣于山之趾循次設位

만근시상이석인사다망유사세천세난일일상묘고전차십수년건각우산지지순차설위

而享祀此之謂明인閣也

이향사차지위명인각야

최근 이래로 세태가 옛날과 달라 인사가 많으므로 일일이 묘소에 올라가 제를 올리기 어려워 십 수년 전에 산 아래 터를 닦아 제각을 세우고 순차적으로 설위하여 향사하니 이것이 명인각이다.

 

向者庚午先阡一隅割入新市街自當局準價推尋緬襄治山之後以其餘貨重建明閣開

향자경오선천일우할입신시가자당국준가추심면양치산지후이기여화중건명인각개

役於

역어

지난 경오년에 묘역 일부가 신시가지역에 편입되어 당국으로부터 보상을 받아 그것으로 산소를 옮겨서 장사를 다시 지내고 치산한 후에 남은 재정으로 명인각을 중건하였다.

 

壬申暮春而輸關北拱抱之美材選人間文化之良工爲堂爲室爲廚爲庫丹之碧之輪焉奐

임신모춘이수관북공포지미재선인간문화지량공위당위실위주위고단지벽지륜언환

焉而闢之

언이벽지

임신년(1992) 늦은 봄에 기공하여 아름드리 좋은 재목을 모아 인간문화재 장인을 선발하여 사당을 세우고 재실을 만들매 준비실을 곁들인 다음 화려하게 단청을 꾸미니 웅장하고 성대하다.

 

以三門環之以墻匪惟體制咸備將事不窘極其侈大壯麗可使觀瞻一新耳目矣

이삼문환지이인장비유체제함비장사불군극기치대장려가사관첨일신이목의

이어 삼문을 세우고 담장을 둘러치니 체제가 완벽하고 모든 일이 군색함이 없을 뿐만 아니라 아주 장대하고 화려하여 한번 쳐다보면 이목이 새로워진다.

 

越明年九秋竣其成後孫根碩鶴圭以其闔宗之意再到錦江上責先誼而要種宣爲記顧以

월명년구추준기성후손근석학규이기합종지의재도금강상책선의이요종선위기고이

不文且病重違固請

불문차병중위고청

그 이듬해 가을에 준공을 하고 후손 근석과 학규가 그 문중의 뜻으로 두 번씩이나 내가 사는 금강으로 찾아와 선대(先代)와 오랜 의(誼)가 있으니 명인각 기문을 요청하였으나 돌이켜 보면 졸문에 병조차 들어 간청을 거듭 사양하였다.

 

旣述梁頌復銘阡碑一人而再之己甚無謂己甚乎無己則柳有說焉禮不云乎父作子述詩

기술양송복명천비일인이재지기심무위기심호무기즉류유설언례불운호부작자술시

曰繩其祖武夫爲人子而善述其父事爲人孫而能繩其祖武可謂之孝子慈孫而移其孝慈

왈승기조무부위인자이선술기부사위인손이능승기조무가위지효자자손이이기효자

於國家民族則亦可爲忠義之人也

어국가민족즉역가위충의지인야

이는 이미 상량문을 지었으니 한 사람이 두 번 글을 짓는 것이 심한 일이 아닌가 싶으나 그만 둘 수 없다면 글을 지을 수 밖에 없지 아니한가. 예기(禮記)에 아버지가 창작하고 아들은 기술한다 하였고 시경(詩經)에는 그 조부의 뒤를 잇는다고 하였으니 남의 자식이 되어 그의 아버지 일을 잘 기술해야 하고 남의 손자인 자는 그 조부의 자취를 계승하여야 바야흐로 효자이며 자손(慈孫)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효자와 자손이 국가와 민족에 이바지하면 역시 이들이 충성과 의사(義士)이다.

 

目今洋潮陷溺人心子焉孫焉而有能孝且慈者甚선可望其有敦尙忠義哉竊惟柳氏之門

목금양조함익인심자언손언이유능효차자자심선가망기유돈상충의재절유류씨지문

世以淸白與忠義爲傳家之箕業故遺風餘烈猶有所炳朗未泯曷不懿歟雲乃

세이청백여충의위전가지기업고유풍여열유유소병랑미민갈불의여운내

현금(現今)에 서양풍조가 인심을 함몰시키므로 자손(子孫)된 자들이 효자(孝子)와 자손(慈孫)이 되는 자 아주 적다. 따라서 돈목하고 충성하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가만히 생각하니 류씨의 문중에 대대로 청백과 충의를 대대로 가문에 전하는 전가의 세업으로 삼아 왔기 때문에 옛부터 전해오는 유풍여열이 아직도 찬란히 남아 끊어지지 않고 있으니 어찌 아름다운 일이 아니겠는가.

 

諸君子是則是效克勤于先事是豈非無첨所生聿修厥德者乎若夫出入是閣而薄乎追遠

제군자시즉시효극근우선사시개비무첨소생율수궐덕자호약부출입시각이박호추원

報本之誠雖堂室傑狙豆豊潔未免爲虛構假設也可不懼哉可不念哉至其先德梁頌詳

보본지성수당실굉걸저두풍결미면위허구가설야가불구재가불념재지기선덕양송상

焉此不復贅

언차불복췌

癸酉大暑節月城李種宣記

계유대서절월성이종선기

후손된 여러 군자들은 이를 법으로 삼고 본받아서 능히 선사(先事)에 부지런하고 착실하게 근실한다면 이것이 어찌 선조를 욕되지 않게 하고 그 훌륭한 덕업을 계승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만약 이 명인각에 출입하면서 조상의 덕을 추모하고 태어난 근본을 잊지 않고 보답하는 추원보본의 정성이 부족하다면 비록 화려하게 큰 제각을 세우고 풍성한 제수를 올리더라도 허구와 가설을 면치 못할 것이니 두렵지 않을 수 있겠으며 염려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선대의 덕업에 있어서는 상량문에 상세히 언급하였으니 여기서는 다시 쓰지 않는다.

계유 대서절 월성 이종선 기

 

 

 

維京畿之高陽治內幸信洞山水明麗局勢開陽而前後邱壟左右峯巒回互磅薄羅列

유경기지고양치내행신동산수명려국세개양이전후구롱좌우봉만완단회호방박나열

者或低如拱如一見可知其爲好風水是乃晉陽柳氏之五百九十有餘年世葬阡也

자혹저여공여읍일견가지기위호풍수시내진양류씨지오백구십유여년세장천야

경기도 고양의 행신동은 산수가 명려(明麗)하고 국세(局勢)도 남향으로 열리어 전후좌우로 산봉우리들이 꿈틀거리며 에워싸고 방박(가득차게)지게 벌려 있어 혹은 높고 혹은 나직하게 팔짱을 낀 듯이 손길을 잡은 듯이 이루어졌으니 한번만 보아도 좋은 풍수임을 알 수 있다. 이곳이 바로 진주류씨의 오백구십 여년 동안 여러 대의 선조의 묘를 모시고 있는 세장지이다.

 

其如崇封卽麗朝藝文館大提學柳公諱구公於鼎革自靖以沒諡靖平與其子直提學諱謙

기여숭봉즉려조예문관대제학류공휘구공어정혁자정이몰시정평여기자직제학휘겸

竝錄淸白自是궐浚積累大發文武重臣與夫忠義節烈孝友淸白之大夫士史不絶書擧其

병록청백자시궐준적누대발문무중신여부충의절열효우청백지대부사사불절서거기

最顯則若貞敏公辰仝救己卯諸賢疏請復明小學之敎退翁稱以一陽若忠景公珩壬선背

최현즉약정민공진동구기묘제현소청복명소학지교퇴옹칭이일양약충경공형임선배

捏盡忠報國露梁之轉爲李忠武前鋒六中丸不死而立奇勳若忠壯公琳丙子亂擧義赴敵

날진충보국노량지전위이충무전봉육중환불사이입기훈약충장공림병자난거의부적

强應徵兵反爲明朝全節其他大小科宦指不勝루而逮夫近世亦多各要人鳴乎盛哉凡此

강응징병반위명조전절기타대소과환지불승루이체부근세역다각요인명호성재범차

諸公幾乎從葬而不直是也

제공기호종장이불직시야

처음으로 모신 분이 바로 고려 때 예문관대제학을 지내신 류공 휘 구이다. 공은 고려가 망한 뒤에 은거하다 돌아가셨으며 시호는 정평이니 그 아들 직제학 겸과 함께 청백리에 기록되었다. 그 뒤에 어진 덕을 널리 베풀어 세상에 미치게 하는 적덕누인(積德累仁)으로 인해 크게 발전해서 문무중신(文武重臣)과 충의절열(忠義節烈)과 효우청백(孝友淸白)의 대부(大夫)와 선비가 역사에 끊임없이 나타났다. 그 중 가장 훌륭한 분을 열거한다면 정민공 진동은 기묘사화(己卯士禍) 때에 여러 현인(賢人)들을 힘껏 구출하고 다시 소학(小學)의 가르침을 밝히고자 상소(上疏)해서 간청하니 퇴계선생이 일양소(一陽疏)라 칭송하였다. 충경공 형(珩)은 임진왜란 때에 등에다 충성을 다하여 나라에 보답하겠다는 진충보국(盡忠報國)이라는 글자를 새기고 노량의 싸움에서 이충무공(李忠武公) 전봉(前鋒)이 되어 여섯 번이나 총환을 맞으면서도 죽지 않고 커다란 공(功)을 세웠다. 충장공 림(琳)은 병자호란(丙子胡亂) 때에 의병을 모아 적을 치고자 하였으니 청(淸)의 강제징병에 응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도리어 명조(明朝)를 위하여 전절(全節)하였다. 그 밖에 대소과(大小科)로 벼슬을 한 사람들은 이루 손가락으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근세에 와서도 각계에 요인이 많으니 아! 훌륭하도다. 이러한 제공(諸公)들이 대개 이곳에 입장(入葬)되었다.

 

上自傍系下及宗支同山而樂石築壇而設享者累累至二十三墳竝其魯부洽滿四十餘位

상자방계하급종지동산이락석축단이설향자누누지이십삼분병기노부흡만사십여위

그 뿐만 아니라 위로 방계와 아래로 한 종중의 지파(자손)에 이르기까지 같은 산에 묘소와 설단으로 여러분이 모셔져 있어 향사(享祀)하는데도 20여(餘) 곳에 이르며 그 배위(配位)까지 합하면 무려 40여(餘) 위(位)나 된다.

 

每當歲薦勢難逐位將事故前此二十年癸丑灰廊明인祭閣代各設位於廳舍而循序進行

매당세천세난축위장사고전차이십년계축회랑명인제각대각설위어청사이순서진행

雖是禮無可據撚當此世故多端人事悤遽之日酌古通今亦或一道也

수시예무가거연당차세고다단인사총거지일작고통금역혹일도야

매양 세일사(歲一祀)를 당하면 형편상 일일이 상묘봉행(上墓奉行)할 수 없으므로 20년전(年前) 계축(癸丑)에 명인제각(明인祭閣)을 건립하고 모든 선영(先靈)을 청사에 설위(設位)하고 차례대로 행사하니 비록 전대(前代)의 예문(禮文)은 아니지만 요즈음 같이 세태가 복잡하고 인사가 바쁜 시절에 고례(古禮)를 짐작하고 시대 실정도 융통하는 뜻으로는 또한 한 가지 방도(方道)가 된다고 하겠다.

 

尙幸祀事盡誠展省無怠俄於庚午世阡一部未免桑海之變盖因國家産業偏於京師人海

상행사사진성전성무태아어경오세천일부미면상해지변개인국가산업편어경사인해

泛濫有如是也此實大同通患而惟是優得報償旣皆緬襄於故山剩麓繼以十五億鉅貨重

범람유여시야차실대동통환이유시우득보상기개면양어고산잉록계이십오억거화중

建舊閣制甚侈大令人당

건구각제심치대령인당시

今年壬申陽復十一日甲寅擧虹梁其宗會長根昌記余屢銘先碣要六偉之文非惟病不能

금년임신양복십일일갑인거홍양기종회장근창기여루명선갈요육위지문비유병불능

 筆迫於日時不 騈儷略序顚末如右係之以歌頌

차필박어일시불용병려약서전말여우계지이가송

어쨌든 향사에 정성을 다하고 성묘에도 충실하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지난 경오년(庚午年)에 세천(世阡)의 일부가 세상 일이 덧없이 바뀌는 상전벽해(桑田碧海)의 변천을 만났으니 대체로 국가산업을 서울지역 중심으로 편중되기 때문에 인해의 자연(自然) 치람(侈濫:지나치게 사치하여 분수에 넘침)을 막을 수 없게 되었으나 실(實)은 대동적인 걱정이지만 보상을 넉넉히 받아 이미 여러 분상(墳上)을 구산(舊山)의 남은 기슭에 산소를 새로 옮겨서 장사를 다시 지내고(緬奉) 이에 십오억 거화(鉅貨)로 제각(祭閣)을 거듭 세우니 매우 치대(侈大)하여 사람들의 눈을 놀라게 할 만하다.

금년 임신년(壬申年) 동짓달 11日 갑인(甲寅)에 상량을 하게 됨에 대종회장(大宗會長) 근창(根昌)이 내가 여러 번 그의 선갈(先碣)에 명(銘)함을 기억하고 육위문(六偉文)을 청(請)하니 신병으로 붓을 잡기 어려울 뿐 아니라 일시가 촉박해서 변려체를 쓰지 못하고 대략 전말을 이상과 같이 서술한 다음 가송(歌頌)으로 이었으니

 

兒郞偉抛梁震三角萬인晉陽忠節與之竝峻

아랑위포양진삼각만인진양충절여지병준

아랑위 대들보를 동쪽에 올리니 삼각산 일만 길 높구나. 진양류씨(晉陽柳氏)의 충절도 그와 함께 높으리.

 

兒郞偉抛梁離京國在斯烟花異昔亦足一噫

아랑위포양이경국재사인화이석역족일희

아랑위 대들보를 남쪽에 올리니 서울이 여기로다. 그 풍경이 옛과 다르니 다시 한번 아쉽구나.

兒郞偉抛梁兌獰風腥雨百年末晴民이墳敗

아랑위포양태령풍성우백년말청민이분패

아랑위 대들보를 서쪽에 올리니 거센 바람 험한 비 백년(百年)토록 개이지 않아 우리 윤강(倫綱) 다 무너지었네.

 

兒郞偉抛梁坎胞族相喊山河中分百世之憾

아랑위포양감포족상함산하중분백세지감

아랑위 대들보를 북쪽에 올리니 동포끼리 서로 겨루어 산하가 분단되었으니 백세의 한(恨)이로구나.

 

兒郞偉抛梁天報施昭然轉災作福更賭綿綿

아랑위포양천보시소연전재작복경도면면

아랑위 대들보를 위쪽으로 올리니 하늘의 보답이 밝고 밝아 재앙을 바꾸어 복록(福祿)을 다시 면면하리.

 

兒郞偉抛梁地緬奉如禮大厦重成熟不찬賀

아랑위포양지면봉여예대하중성숙불찬하

아랑위 대들보를 아래쪽으로 올리니 면봉(緬奉)을 예(禮)대로 마치고 큰 재실 이루었으니 그 누가 축하하지 않을쏜가.

 

伏願上樑之後神天永佑棟宇萬全子孝孫昌世世

복원상량지후신천영우동우만전자효손창세세

承祖宗遺業文講武習人人爲國家良材千秋萬歲之報祀信無窮焉

승조종유업문강무습인인위국가양재천추만세지보사신무궁언

엎드려 원하건대 상량한 뒤에는 신명(神明)과 하늘이 길이 도우사 동우(棟宇)가 만전할 지어라. 자효손창(子孝孫昌) 대대로 조종(祖宗)의 유업을 이어가고 문강무습(文講武習) 사람마다 국가의 좋은 재목되리라.

천추만세의 보사(報祀)가 참으로 끝이 없으리라.

 

檀紀四千三百二十五年壬申復月朔朝 단기사천삼백이십오년임신복월삭조

月城 李種宣 謹述竝書 월성 이종선 근술병서

임신년십일월십일일에 월성 이종선이 짓고 씀.

 

檀紀四千三百二十五年歲次壬申十一月十一日

단기사천삼백이십오년세차임신십일월십일일

甲寅午時酉坐 갑인오시유좌

 

龍  檀紀四千三百二十五年歲次壬申十一月十一日

용  단기사천삼백이십오년세차임신십일월십일일

    甲寅午時上樑于西坐伏願上樑之後 갑인오시상량우서좌복원상량지후

    神天永佑子孝孫昌世世承祖遺業 신천영우자효손창세세승조유업

                              千秋萬歲 천추만세

    棟于萬全文講武習人人爲國家良材 동우만전문강무습인인위국가양재

    之報祀信無窮焉  龜 지보사신무궁언  구

 

 

 

戴霜履霜氣序流而感愴

대상이상기서유이감창

서리 내리고 이슬 밟으면 시절 바뀌어 슬픈 감상으로

 

念玆在玆변豆告而侑享

염자재자변두고이유향

자나 깨나 선조님 생각으로 제물 차려 흠향을 비옵니다

 

致齋散齋儀禮備而旣成

치재산재의례비이기성

재계하고 정성 모으니 예의도 갖추어 졌데

 

勉爾戒 懿德修而永承

면이계이의덕수이영승

경계 하노라 모든 자손은 덕을 닦아 길이길이 이어가세

 

 

 

益愼益勤保家聲以玆大

익신익근보가성이자대

삼가고 정성들여 가성을 더욱 크게 보전하리

 

是彛是訓進世德於無疆

시이시훈진세덕어무강

이를 법하고 교훈 삼아 세덕을 오래 간직하리

 

旣和旣淸衍烈祖以永享

기화기청연열조이영향

화합하고 깨끗이 하여 선조님 즐겁게 길이 받들고

 

乃睦乃인敦宗族以有誼

내목내인돈종족이유의

화목과 화합으로 종족이 한데 뭉쳐 오래도록 정의를 나누고

 

克敬克誠慕先祖於報本

극경극성모선조어보본

공경하고 정성들여 선조를 보본하는 마음으로 모시리

 

有誠有神傳子孫以長久

유성유신전자손이장구

정성이 있으면 신령이 있는 법 자손에 오래 전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