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작성자 류근영
작성일 2014-12-04 (목) 16:24
ㆍ추천: 0  ㆍ조회: 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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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소중한 선물

      * 가장 소중한 선물 *

      크리스마스 이브 주일 날이었다. 아이들과 교회에 가려고 서둘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잠깐 친구네 갔다 온다던" 아들애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교회는 가야겠는데······. 오지 않는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걱정하며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 헐레 벌떡 뛰어오는 아이가 보였다. 추운 날씨에 시퍼렇게 질린 얼굴로 들어온 아이를 보자 울화가 치밀었다.
      지금까지 어디서 뭐 하느라고 이제 오는 거야 ? 엄마랑 누나랑 너 기다린 거 알아, 몰라? 교회 갈 시간도 늦어버렸잖아 !"
      아이는 얼마나 서둘러 뛰어왔는지 숨을 헐떡거리느라 대답조차 제대로 못했다. 그러고는 대답 대신 손에 든 검은 봉지를 내게 내밀었다. 아이의 손은 꽁꽁 얼어 있었다.
      엄마 신어. 이거 신으면 발 안시리대. 크리스마스 선물이야. 아이는 입조차 얼었는지 말까지 더듬거렸다.
      "이게 뭔데 ?"
      봉지를 여는 순간 내 입이 딱 벌어졌다. 털신이었다. 할머니들이 한겨울 내내 신고 버티는 털신. 그 때에도 그런 털신이 있다는 게 신기하기했지만,
      당시 열살 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어디서 그것을 살 수 있었는지, 그게 더 놀랍고 궁금했다. 더구나 그 추운 밤에 말이다. 아이가 말했다.
      학교 가는 길목 시장에서 산 것인데. 엄마는 가게에서 일하니까 요즘처럼 추울 때 발 시리잖아. 그래서 내가 용돈 모아서 크리스마스 선물로 샀어."
      그 마음이 얼마나 예쁜지......
      나는 왈칵 쏟아지려는 눈물을 간신히 참고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며칠 후, 나는 그 내막을 듣기 위해 그 신발 가게 아저씨를 찾아갔다. 아이가 한 달 넘게 아침저녁으로 와서는 털신에 대해 묻기만 하더라는 것이다.
      아저씨, 저 털신 신으면 정말 발 안 시려요? 여기 있는 거 다 팔리면 또 갖다 놓으실 거예요?" 아저씨는 매일 인사하듯 들르는 아이에게 꽤나 시달렸던 모양이었다.
      처음에는 장난친다고 혼을 냈는데, 아이가 워낙 진지하게 털신에 대해 묻고 쳐다보고 만지는 바람에 나중에는 야단을 칠 수도 없었다고 한다.
      그러더니 크리스마스 이브 날 밤에 찾아와서는 돈이 모자라니 조금 깎아달라"고 했단다.
      털신 값이 10,000 원이었는데 9,850원, 그것도 전부 동전으로 내어놓는 아이를 보고 아저씨는 고놈 참 기특하다' 싶어서 아이에게 500원을 되돌려주었다고 했다.
      내 아들, 아빠 없이도 반듯하게 잘 자라주는구나!' 그러나 뿌듯한 마음 한켠에 용돈이라고 제대로 줘보지 못했는데 어린 것이 그 돈을 모으려고 얼마나 애썼을까 하는 생각이 들자 가슴이 아팠다.
      아이가 모을 수 있는 돈이란 게 어쩌다 내가 주는 심부름 값, 가게 손님이나 친척 들이 가끔 주는 용돈이 전부였을 텐데 말이다. 내 발은 그 털신 덕분에 그 해 겨울, 조금도 시리지 않았다.
      그 뒤로도 겨울만 되면 꺼내 신다 보니 어느새 듬성듬성 털이 빠지고 밑창이 새서 눈이라도 오는 날이면 물이 스며들어 더 이상 신을 수 없게 되었다.
      아들은 "더 좋은 신발 사드릴 테니 버리세요"라고 야단이었지만, 나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물건 다루듯 잘 싸서 신발장 안에 넣어두었다.
      비록 형편없이 낡아버렸지만...... 얼굴까지 꽁꽁 얼어가면서 신발 가게로 달려갔을 아이의 사랑이 스민 그 털신을 이 세상 어떤 신발과 감히 비교할 수 있을까? 이제 더 이상 신을 수는 없지만 두고두고 꺼내보기라도 할 생각이다.
      세월이 흐르고, 그때의 열 살짜리 꼬마는 엄마인 내가 올려다봐야할 정도로 성큼 자라 고등학생이 되었다. 아이는 그때만큼 다정하지도 않고 때론 무뚝뚝하기까지 해서
      가끔씩 섭섭할 때가 있다. 하지만 그때마다 털신을 꺼내 보면서 아이의 그 따뜻한 마음을 기억하고 싶다. 시린 엄마 발이 걱정되어
      사탕 하나, 과자 한 봉지의 유혹을 뿌리친 채 몇달 동안 고사리 손으로 모은 돈으로 사준 털신 한 켤레. 그것은 그동안 내가 받은 크리스마스 선물 중 가장 소중하고 비싼 것이었다.
      그해 겨울 내내 나의 발은 참으로 따뜻했다. 아직도 그 해 겨울의 크리스마스가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 옮겨온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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