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대승공 위 차달 묘(옛모습)

시조 대승공 위 차달 묘(현재모습)

 

대승공 약사大丞公 略史----------

* 우리 진주류씨의 시조(始祖)는 대승공 류차달(大丞公 柳車達)이시다. 초명(初名)는 해(海)이며 字는 응통(應通), 號는 아사(鵝沙)이시다. 후백제 말 유주(儒州)의 호족(豪族)이었던 公은 견훤(甄萱)이 전주를 점령하고 후백제라 자칭(自稱)하며 백성들을 잔학(殘虐)함으로서 고려 태조 왕건(王建)이 이들을 정벌하려 할 때 公께서는 수레를 건조하여 집에 저장된 양곡을 군량(軍糧)으로 조달, 마침내 태조가 삼한(三韓)을 통합하여 대고려국(大高麗國)을 세울 수 있도록 후삼국 통일(後三國 統一)에 기여한 공로가 있어 태조 통합삼한익찬벽상 2등 공신(太祖 統合三韓翊贊壁上 二等 功臣)으로 책봉되어 중대광 대승공(重大匡 大丞公)으로 제수(除授)되었고 이차위달(以車爲達)의 뜻과 조상의 성(姓)을 잊지 않는다는 뜻으로 초명 해(初名 海)를 차달(車達)이라 사명(賜名)하였다. 대승공 휘 차달(諱 車達)을 시조로 하여 유주류씨(儒州柳氏)로 내려오다가 고려 고종(高宗) 때에 문정공 류경(文正公 柳璥)께서 왕정복고(王政復古)의 위사공신(衛士功臣)이 되시어 그 功으로 유주(儒州)를 문화(文化)로 승격하게 됨으로써 관향(貫鄕)이 문화류씨(文化柳氏)가 된 것이다.

 

* 태조 19년(936) 公은 대승(大丞)으로서 태조의 원당(願堂)인 공주 계룡산 동학사에 가서 그의 조상이 신라에 충성한 것을 감개하여 태조로부터 윤허를 받아 신라 시조 박혁거세(朴赫居世)와 눌지왕(訥祗王)의 충신 박제상의 충혼(忠魂)을 초혼(招魂)하여 제사하고 동계사(東谿祠)를 창건하였다. 대승공 류차달이 창건한 동계사가 오늘날 숙모삼사(肅慕三祠)인 동계사(東谿祠)・삼은각(三隱閣)・숙모전(肅慕殿)의 시초가 되었다.

 

* 公의 묘소는 현재 황해도 구월산(黃海道 九月山)에 보존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