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향 재배

제주가 제상 앞에 정중하게 무릎을 꿇고 공손하게 두 손으로 향불에 분향을 한 뒤 절을 두 번 한다.

강신(降神)
재배

강신이랑 신위(神位)께서 강림하시어 음식을 드시기를 청한다는 뜻이다. 제주 이하 모든 사람이 손을 모아 서 있고 제주가 신위 앞에 나아가 꿇어 앉아 분향하고 집사자가 술을 술잔에 차지 않도록 조금 따라 제주에게 주면 제주는 받아서 모사 그릇에 3번으로 나누어 붓고 빈 잔을 집사자에게 돌려 보내고 일어나서 2번 절한다. 향을 피우는 것은 위에 계신 신을 모시고자 함이요 술을 모사에 따르는 것은 아래에 계신 신을 모시고자 함이라 한다.

참신(參神)

참신이란 강신을 마친 후 제주 이하 모든 참신자가 함께 2번 절하는 것을 말한다. 신주인 경우에는 참신을 먼저, 지방(紙謗)인 경우에는 강신을 먼저 한다.

초헌(初獻)

초헌이란 제주가 신위 앞에 나아가 꿇어 앉아 분향한 후 집사자가 잔을 제주에게 주면 제주는 잔을 받아 집사자가 잔에 술을 따르면 제주는 강신할 때와 같이 오른손으로 잔을 들어 모사에 조금씩 3번 기울여 부은 다음 양손으로 받들어 집사자에게 주면 집사자는 그것을 받아서 제상에 올린다.

먼저 고위(考位, 아버지 위) 앞에 올린다.

독축(讀祝)

초헌이 끝나면 제주 이하 모든 참사자가 무릎을 꿇고 부복하며 축관은 앉아서 엄숙한 목소리로 축문을 읽는다. 읽기가 끝나면 잠시 후 일어나며 제주는 절을 두 번 한다.

아헌(亞獻)

아헌이란 2번째 올리는 잔을 말한다. 2번째 잔을 주부가 올리는 것이 예의이지만 올리기 어려울 때에는 제주의 다음 가는 근친자나 장손이 올린다. 주부가 올릴 때에는 4번 절한다.

종헌(終獻)

종헌이란 3번째 올리는 잔을 말하는데 종헌은 아헌자의 다음가는 근친자가 아헌 때의 예절과 같이 한다.

집안에 따라서는 아헌과 종헌 때에도 적을 올리는 경우가 있다.

계반삽시
(啓飯揷匙)

계반삼시란 메(밥) 그릇의 뚜껑을 열고 수저를 꽂는 것을 말하는데 수저는 동쪽을 향하게 꽂는다.

수저 바닥이 동쪽을 향하게 하여 꽂는다.

유식

첨작(添酌)이라고 하는데 첨작이라 함은 종헌자가 채우지 않은 술잔에 제주가 무릎을 꿇고 다른 잔에 술을 조금 따라서 좌, 우측 사람들 통하여 술을 채우도록 한다.

합문(闔門)

합문이란 참사자 일동이 문을 닫는 것을 말하는데 대청이나 마루에서 조용히 기다린다. 대청일 경우에는 뜰아래로 내려선다.

합문의 시간은 밥을 9번 떠먹을 동안의 시간

계문

계문이란 문을 여는 것을 말한다.

제주가 앞에 서서 기침을 하고 일동을 데리고 들어간다.

헌다(獻茶)

숭늉을 갱(국)과 바꾸어 올리고 메(밥)를 조금씩 3번 떠서 말아놓고 정저한다. 이때 메에 꽂아 놓은 숟가락을 숭늉 그릇에 반듯이 담그어 놓는다.

철시복반
(撤匙復飯)

철시복반이란 숭늉 그릇에 있는 수저를 거두어 메 그릇을 덮는 것을 말한다.

사신(辭神)

참사자 일동이 2번 절하고 신주일 경우에는 사당에 모시고 지방과 축문을 불태운다.

철상(撤床)

철상이란 상을 걷는 것을 말하는데 모든 제수(祭需)는 뒤에서부터 물린다.

음복(飮福)

음복이란 조상께서 주신 복된 음식이라는 뜻으로 제사가 끝나면 참사자와 가족들이 모여서 시식을 한다. 또한 친족과 이웃에도 나누어 주고 이웃 어른을 모셔다 대접하기도 한다.

 

조상의 제사:
명절차례 - 추석, 설 등 명절제사
기 제 사 - 나로부터 고조까지 4대를 집에서 받드는 제사
묘      제 - 5대조 이상의 조상을 묘에서 받드는 제사
향      사 - 불천위를 봉안한 사당에서 받드는 제사
조상을 받드는 제사중에 누구나 할 것 없이 현실적으로 받들고 있으며 가장 많은 관심을 갖는 것이 기제사이다.

              구분
신분

고려때
정포은의 제례

조선조
경국대전

1894년
갑보경장이후

근세의
가정의례준칙

3품 이상

3대까지

4대까지

신분제도철폐
되어 모두 4대까지

2대까지균일

 

4-6품

2대까지

3대까지

7품이하선비

1대만

2대까지

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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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만

 

고려시대 가족제도의 특성은 딸이 친정부모를 봉양하는 풍습이 있었다하며 종법가족제도가 확립되지 않은 시대에 부계혈통은 종적 대물림이나 제사상속제도가 정착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고려말에 포은 정몽주선생이 유교문화의 효 사상으로 제례규정을 정하면서 신분별로 최고 3대 봉사를 규정하고 명민(서민)의 제례규정이 없음을 보면 신분이 부여된 계층에서 조상을 받드는 제사제도가 정착된 듯하다.
그 후 조선조에서는 현손까지(20세기준 80세 이상이면 5세손을 볼 수 있음) 고조의 복을 입기 때문에 고조까지 4대봉사로 단계별 1대씩 상향조정했다고 보는 것이 통설이다. 조선조 말기인 1894년 갑오경장이 일어나 신분제도가 철폐되면서 신분이 높고 낮을 수 없으며 평민도 조상의 제사를 받들 수 있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효 사상으로 극대화되어 모두가 4대봉사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근대 산업사회로 접어들면서 4대봉사는 한 해에 최소한 8회 이상의(어머니는 2명 이상 될 수 있음)기제사를 받드는 어려움이 있음을 감안하여 보편적으로 손자를 키우고 사랑을 느끼는 할아버지(2대)까지만 제사를 지내도 되도록 가정의례준칙을 정했으나 장손집에서는 대부분 4대봉사를 해오고 있다.
다만 유교적 가정외의 기독교 불교가정에서는 종교의식을 많이 따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말할 수는 없으나 조상을 받드는 제사는 오랜 전통문화라는 차원에서 제사절차를 설명한다.

 

제례(祭禮)의 예절

 

제사를 지내는데 대한 예를 말하는 것입니다.

자손들은 조상 모시기를 살아 계신 부모 모시듯이 정성들여 차린 음식 앞에 두 번 절하는 것이 어찌 효자, 효녀가 아니겠습니까

오늘만은 집안 친척 형제끼리 가신 분을 그려보며 웃음과 대화 속에서 형제간의 정을 나누고 화목한 가정을 이룩합시다.

이것이 제삿날이 아닌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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